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복귀작 영화 미키 17을 드디어 극장에서 관람하고 왔다. 에드워드 애쉬튼의 원작 소설 미키 7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영화화 소식에 기대가 컸는데, 단순히 책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수준이 아니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원작의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느낌이다. 미키 7에서 미키 17로 제목이 바뀌면서 늘어난 죽음의 횟수만큼이나 깊어진 복제인간 익스펜더블의 고뇌, 그리고 특유의 뼈 때리는 블랙 코미디 요소까지. 영화 미키 17과 원작 소설이 어떤 결정적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는지, 왜 이토록 극찬을 받는지 솔직한 관람평과 함께 3가지 핵심 포인트를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려 한다.
봉준호식 블랙 코미디로 재탄생한 미키 17 첫인상
바람도 쐴 겸 심야 영화로 벼르고 벼르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보고 왔다. 사실 개봉 한참 전부터 에드워드 애쉬튼의 원작 소설인 '미키 7'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과연 그 활자 속의 차가운 얼음 행성 니플하임이 스크린에 어떻게 구현될지 기대가 엄청나게 컸다. 결론부터 딱 말하자면, 단순히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겨온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거장 특유의 섬세한 터치, 일명 봉테일이 듬뿍 가미되면서 원작의 뼈대만 남겨둔 채 완전히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느낌이랄까. 낯선 얼음 행성 개척에 투입된 소모품 복제인간 '익스펜더블'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영화는 원작보다 훨씬 더 음울하면서도 묘하게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묵직한 블랙 코미디로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단순히 우주에서 살아남는 스펙터클한 생존극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초반에 살짝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스크린 곳곳에 숨겨진 은유와 날카로운 유머 코드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미키의 지질하면서도 짠내 나는 모습이 로버트 패틴슨의 피곤에 전 얼굴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되는 걸 지켜보는 쾌감도 무척이나 쏠쏠했다.
미키 7에서 17로, 늘어난 죽음의 숫자와 짙어진 고뇌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첫 번째 결정적 차이점은 바로 제목 그 자체, 즉 숫자의 거대한 변화다.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6번 죽고 7번째로 복제된 '미키 7'이라는 설정인데 반해, 영화는 무려 16번을 죽고 17번째로 깨어난 '미키 17'로 상황을 훨씬 더 지독하고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솔직히 처음에 제목이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을 때는 그냥 글로벌 시장에 맞게 어감 때문에 바꾼 건가 싶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이 숫자 10의 차이가 주는 체감 무게가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더라. 6번 죽은 것과 16번이나 끔찍한 죽음을 무한 반복하며 톱니바퀴처럼 갈려 나간 것은 그 캐릭터가 속으로 짊어지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의 깊이 자체가 아예 다를 수밖에 없다. 방사능에 맨몸으로 노출되거나 시퍼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등 온갖 험악한 방식으로 소모품처럼 쓰이고 무참히 버려진 미키의 처절한 기억들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갈 때 진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원작의 미키가 살짝 체념한 듯한 가벼운 톤으로 자신의 죽음을 덤덤하게 묘사한다면, 영화 속 미키 17은 그 겹겹이 쌓인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피폐해져 버린, 어딘가 나사가 하나 제대로 빠진 듯한 광기 어린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고 끔찍하게 그려내고 있다. 패틴슨의 그 초점 잃고 퀭한 눈동자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는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원작의 가벼움을 덜어내고 더해진 날카로운 계급 비판
두 번째로 꼽고 싶은 확실한 차이점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의 깊이와 봉 감독 특유의 날카로운 계급 비판이다. 원작 소설은 우주 개척이라는 험난한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엎치락뒤치락 좌충우돌 어드벤처 느낌이 꽤 강한 편이다. 미키가 갖은 위험에 처하고 그걸 요리조리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비교적 경쾌하고 오락적으로 다뤄져서 책장이 훅훅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걸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니, 특유의 자본주의와 꽉 막힌 계급 사회를 향한 서늘하고도 씁쓸한 풍자가 아주 기가 막히게 얹혔다. 영화 속에서 복제인간 익스펜더블은 단순히 복원 가능한 편리한 생명체가 아니라, 고장 나면 언제든 갈아 끼우는 기계 부품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완벽한 최하층민 노동자로 철저하게 전락해 버린다. 사령관을 비롯한 기지 내 고위 계급들이 미키를 벌레 보듯 대하는 그 무심하고 폭력적인 태도들이 참으로 기괴하면서도 현실적이라 보는 내내 가슴 한구석에 씁쓸함이 훅 밀려왔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마저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라는 얄팍한 잣대로 철저하게 계산되는 그 차가운 시스템을 아주 건조하게, 하지만 뼛속까지 시리도록 차갑게 보여주는 연출 방식이 정말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마치 설국열차의 비참한 꼬리칸을 우주 한복판의 얼음 행성 지하실로 그대로 떼어 옮겨놓은 듯한 그 숨 막히는 서열 구조는, 소설에서는 미처 다 느끼지 못했던 묵직하고 끈적한 공포감마저 안겨주었다. 원작의 팝콘 무비 같은 오락성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현실의 뼈를 아주 아프게 때리는 철학적 질문으로 서사를 확장시킨 지점이 바로 이 영화를 단순한 SF물에서 명작 반열에 올린 핵심 포인트라 생각한다.
소설과 영화의 완벽한 상호보완, 미키 17이 남긴 여운
마지막 세 번째 차이점은 두 명의 미키가 한 공간에서 마주했을 때 벌어지는 아찔한 심리전의 톤 앤 매너다. 책에서도 시스템 오류로 인해 미키 7과 미키 8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딜레마가 아주 흥미로운 갈등 요소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활자로만 읽다 보니 그 상황의 기괴함이 조금은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똑같이 퀭하게 생긴 두 명의 로버트 패틴슨이 좁고 칙칙한 우주선 방구석에 마주 앉아 서로 살겠다고 유치하게 티격태격하는 씬은 진짜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묘한 시각적 충격과 미친 텐션을 선사한다. 누가 진짜 원본이고 누가 껍데기 복제인지, 아니 애초에 16번이나 비참하게 죽고 살아난 마당에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 미키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쏟아내는 대화들이 너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슬퍼 보여서 영화 중반부 내내 감정이 참 복잡 미묘해졌다. 소설이 이 어이없는 사건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것인가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영화는 그 꽉 막힌 막다른 골목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뇌 속의 기억이 연속된다면 우리의 영혼도 그대로 연속되는 것인지 아주 집요하고 깊게 파고든다. 저 또한 극장을 터덜터덜 나서면서 나라면 저 끔찍한 윤회의 굴레를 멘털 안 나가고 계속 버틸 수 있을까 한참을 곱씹으며 생각하게 된다. 원작 소설을 이미 재미있게 읽은 분들이라도 봉 감독이 이 거대한 세계관을 완전히 해체하고 다시 자신만의 색깔로 조립해 낸 이 놀라운 영화를 꼭 스크린에서 직접 확인해 보길 강력히 권한다. 서로 다른 매력이 주는 완벽한 상호보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